성경이 말하는 생명수를 주시는 신부는

 

  바로 하늘 예루살렘 어머니하나님입니다~~ 

                                                               

                            성도가 아니예요~!!

 

 

 

 

계시록에서 말하는 신부, 우리에게 생명수를 주시는 분이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신부는 그럼 누구일까요?

 

 

인생들은 누구라도 서로에게 생명을 줄 수가 없죠.

혹시 생명주실 수 있는분 계시나요?

 

없죠 !!!!!

 

그럼 계시록에서 말하는 신부는 과연 누구일까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밧모섬에서 유배 중이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로 성령시대의 구원자에 대한 예언을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과 신부로부터 시작되는 구원의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계에서는 이 성구의 ‘신부’ 존재를 놓고 갑론을박하며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교리비교를 통해 과연 ‘신부’는 누구를 의미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성교단에서는 요한의 계시 속에 드러난 ‘신부’를 왜 성도라고 말할까요?.

 

성도가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둔 신부’라는 근거는 성경의 이 말씀 때문입니.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린도후서 11:2)


 

사도 바울이 고린도 지역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서신에서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 한다’고 기록했습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께 드려지는 정결한 처녀는 당연히 ‘신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신부’라는 단어는 성도를 뜻한다고 여기게 된거죠.

 

 

성경에 기록된 ‘신부’가 ‘성도’라고 해석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신부’를 오직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성경의 전후 문맥을 잘 살펴서 그 의미를 파악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양’에 대해 살펴보면.   성경에서 양(羊)은 통상적으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를 말한다. 그렇다고 성경의 모든 ‘양’을 성도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중적인 의미를 잘 모르고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억지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부’가 ‘성도’라는 해석도 단편적 시선에 불과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등장하는 ‘신부’가 ‘성도’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같은 구절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께서 주시는 것은 ‘생명수’입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주시는 생명수는 오직 구원자께서만 베푸실 수 있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5~7)


 

‘보좌에 앉으신 이’는 구원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른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생명수를 주시는 ‘성령과 신부’는 다름 아닌 구원자가 됩니다. 성령만이 구원자가 아니라 ‘신부’ 또한 구원자로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신부’는 오직 ‘성도’로만 해석된다는 주장은 비성경적 주장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성령과 함께 나타난 신부는 하늘 어머니 바로 어머니하나님입니다.

요한은 21장에서 천사가 보여준 신부의 존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는 곧 어린양의 아내입니다. 성경의 ‘어린양’은 예수님입니다(요한복음 1:29).

그러니 ‘어린양의 아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아내’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초림 예수님께서는 아내가 없으셨고 이 예언은 분명 속히 될 일에 대한 계시이므로 요한계시록의 어린양은 바로 재림 예수님을 뜻하며 어린양의 아내란 재림 예수님의 신부가 됩니다(요한계시록 1:1). 해서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성령과 신부’라고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아내를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누구를 의미하고 있을까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성령과 신부’는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이십니다. 요한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통해 영생을 허락하시는 계시를 기록했던 것입니다.

 


 

성도는 생명수를 받는 존재이지 결코 생명수를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지 구원을 베풀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신부’를 ‘성도’라고만 해석한다면 성도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땅에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어머니하나님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이런 일들이 발생되게 됩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어머니하나님 영접하시어 진정한 생명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성령하나님을 다 다른 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세분 모두가 같은 하나님으로 알려준다 ~
다시 말하자면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오셨지만 같은 하나님으로 알려준다

쉽게 예를 들자면

오 헨리와 윌리엄 시드니 포터, 이부란과 이금순과 프란체스카 도너, 이산과 이형운과 이홍재. 이들은 여덟 사람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합쳐봐야 세 명이다.

‘마지막 잎새’를 쓴 소설가로 잘 알려진 오 헨리의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다.
또, 이부란과 이금순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한국식 이름이다.
이산과 이형운과 이홍재는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의 이름들이다.

이 세 사람은 여러 개의 이름을 쓴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하나님의 이름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성경을 좀 봤다는 사람은 거침없이 ‘여호와’라고 대답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다. 그런데 문제가 남는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예수님은 어쩌란 말인가. 또 문제가 남는다.
사도 요한의 계시 중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호와, 예수, 새 이름. 이 세 개의 이름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6천 년 구속사업의 기간을 세 시대로 구분하시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속사업을 펼쳐가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복음 28:19)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지상대명을 허락하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하셨다. 즉 성부(聖父)의 이름이 있고, 성자(聖子)의 이름이 있고, 성령의 이름이 있다는 뜻이다. 성부의 이름은 여호와다. 그리고 성자의 이름은 예수다. 그렇다면 성령의 이름은 무엇인가.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였다. 이 시대에는 성부인 여호와만이 유일한 구원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자시대에 와서는 누가 구원자였는가.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11~12)


성자시대에 와서는 예수님 외에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시대가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뀌어 구원자의 이름도 여호와에서 예수로 바뀐 것이다.
이 시대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셨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시간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성부시대에는 오직 성부 ‘여호와’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고, 성자시대에는 성자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성령시대로서 구원자의 이름이 성령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이 말씀에서 ‘나’는 예수님이다. 곧 나의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이다. ‘예수’라는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이어야 하는 것이다. 새 이름에 대한 다른 예언의 말씀이 있다.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해주겠다고 했는데, 실제 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4)


돌은 예수님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 돌 위의 새 이름은 예수님의 새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새 이름을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오늘날 예수님의 이름은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새 이름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른 이름이므로 받는 자밖에는 알 사람이 없다고 한 것이다. 바로 이 새 이름이 성령시대 구원자다.

성경은 각 시대마다 다른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사야 43:10)


성부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일컬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하였다. 구원자가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성자시대가 도래되었을 때는 누구의 증인이 되라고 했는가.


…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6~8)


성자시대에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구원자가 예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구원자를 증거하는 것이 증인의 사명이다.

지금 성령시대에는 누구의 증인이 되어야 하겠는가. 당연히 새 이름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 성령시대에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응답받을 수 있다(시편 116:4, 요한복음 16:24).

또한, 성부시대에는 여호와, 성자시대에는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을 수 있었듯이 지금은 반드시 새 이름을 불러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요엘 2:32, 로마서 10:9~13).

그렇다면 새 이름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믿음의 목적인 영혼의 구원을 베풀어줄 예수님의 새 이름, 성령시대 구원자 성령의 이름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경뿐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원자다. 인류는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 또 인류에게 닥친 위기는 무엇이기에 구원자가 등장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기다리는 성령시대의 구원자는 과연 누구인지 알아보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한복음 10:10)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이것이다. 바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지구상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명이 있다. 굳이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다고 하니 예수님께서 주려고 하는 ‘생명’은 무엇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6:63)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육신의 수한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처럼 무익한 육신의 목숨이 아닌 영원히 사는 영혼의 생명, 즉 ‘영생’을 주고 싶어 하신 것이다. 유한한 삶을 생명의 전부로 여기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인류는 왜 영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해답은 창조의 역사가 수록된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하나님께서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그곳에 살게 하셨다. 모든 것을 다스리며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셨다. 단 하나, 바로 선악과만큼은 먹지 말라는 금령을 내렸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단언하셨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뱀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금령을 어긴 결과는 인류의 죽음이었다. 하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그 방법은 바로 생명과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는다면 영생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창세기 3:24)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은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과에 손을 댈 수 없도록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켰다. 결국 생명과의 길은 막혔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 이후 지금까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의 굴레에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손댈 수 없었던 그 생명과를 가지고 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6:53)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며 주신 것이 당신의 살과 피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에덴동산의 생명과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창세의 역사 속에 감추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감추어버린 것. 바로 생명과다. 그런데 이것을 ‘비유’라고 하시며 실체는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꼭 당신의 살과 피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떻게 먹고 마실 수 있을까.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 26~28)


인자의 살과 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된다. 그러니 유월절은 에덴동산의 생명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인류는 구원 얻기 위해 유월절을 지켜야 하며 유월절을 지키는 것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하신 것이다(누가복음 22:15). 이 말씀 속에는 유월절만이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에게 지키라고 예수님께서 전하여 주신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생명과의 진리인 유월절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에게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 이를 회복하기 위해 재림이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두 번째 나타나심, 즉 재림은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처음부터 인류를 위하신 하나님의 마음이며 단 한 번도 변치 않은 사랑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재림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에덴동산의 생명과인 ‘유월절’을 회복해야만 한다.


‘왜 예수님께서 두 번째 오셔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토록 원했던 ‘생명과’를 우리에게 찾아주는 것. 그룹천사들과 화염검으로 막아놓았던 생명과로 가는 그 길을, 오직 하나님만이 열어주실 수 있는 그 길을, 유월절이라는 진리로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이 땅에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생명과인 유월절을 이시대에 알려주신 분이 있다면 그분은 성령시대에 하나님이 분명하다  이시대에 우리에게 유월절을 다시 회복해주신 분이 안상홍님이시다
안상홍님은 구원으로 가는길인 유월절을 우리에게 주신 성령시대 구원자 하나님이시다
안상홍님을 믿어야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계명을 잘 지켜서 세상에 명성과 칭찬도 받게 되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믿고 그 뜻대로 준행하는 시온의 성도들에게 온 세상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습 3장 14~20절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그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시온의 자녀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손을 늘어뜨리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운 없이 손을 늘어뜨릴 만큼 괴롭고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실 것이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성령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자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로서는 이례적으로 권위 있는 영국여왕상  등.  여러상들을 잇달아 수상하고 언론들도 앞다투어 하나님의 교회의 활동과 수상을 보도하며 많은 관심과 찬사를 보내오고 있습니다.

 

영국여왕상등 하나님의교회가 받은 상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 세계 각지의 교회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타인을 위해 사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변 사람들의 정신을 계몽하니 세인들의 눈에도 하나님의 교회가 참으로 좋게 보이게 되어 받은 상입니다.

 

 

지금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성경의 예언이 고스란히 성취되는순간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신 28장 1~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자들을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고 예언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 중에 머리가 되고 꼬리는 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신 28장 13~14절).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들이 이 예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교회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지키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존중하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언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말씀대로 준행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가 바로 영국여왕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된거죠^^

이쯤되면 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라는걸 알게 되죠~~

영국여왕상 받은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속초 하나님의교회^^~
얼마전 포켓몬고 열풍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속초에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이 환경정화활동으로 지역 활성화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속초는 관광지이기에 많은 이들이 오고 가는데요 그만큼 많은 쓰레기들이 나온답니다~~


그래서 속초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환경정화에 나섰습니다

이번엔 금호동으로 고고~~

강원도민일보 기사보기

앞으로도 꾸준히 활동해서 깨끗한 속초를 만들어 주세요^^

하나님의교회에서 하나님의계명을 지킨다면 만사형통!!!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지킬수록 하나님께 큰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다윗은 아들인 솔로몬에게도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온전하게 지키라고 당부했습니다.

왕상 2장 1~3절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다윗이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명을 지키라고 부탁하면서, 그리하면 무엇을 하든지 형통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교회들이 성경에 없는 일요일을 지키고, 크리스마스,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 자신들이 만든 사람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 와중에도 하나님의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새 언약의 안식일과, 새 언약의 모든 절기와 규례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 율례와 언약을 그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지난날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하 18장 1~7절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

유다 왕 히스기야도 그 조상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해주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가 하나님의교회에서 지키는 안식일,유월절 3차7개절기를 지켜 행한다면 만사형통의 축복을 주심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방법보다도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교회)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그 방법보다도 이유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루어나갈지 그 방법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디오도어 루빈

 하나님을 믿는 신앙도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진정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알려주신 바에 따르면 육신의 소욕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분명히 알고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구원의 방법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믿음의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장 9절

하나님의교회에서 천국의 법을 배우고 지켜요^^~



얼마 전 어떤 스카이다이버가 우주복을 입고, 대류권을 벗어난 성층권에서 자유낙하를 시도해 성공했다는 뉴스가 해외 토픽으로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이 도전해보지 못한 높이에서, 그것도 지상과 기온도 크게 차이가 나고 공기도 아주 희박한 곳에서 낙하가 시도되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우주복을 입지 않고 낙하를 감행했다면 어찌되었을까요?

 우주비행사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주에 가려면 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지구는 공기가 있어서 인체의 모든 부위가 적당한 압력 속에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진공 상태인 우주에는 기압의 영향이 없어서 내부의 것들이 급속히 팽창하며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 지구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환경과 온도가 갖춰져 있지만, 우주에서는 지구와 온도의 차이도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우주복은 외부 환경과 상관없이 인체에 적당한 온도와 기압을 유지해주기 위해서 과학적으로 제작됩니다.

우주에서는 지상에서의 방식으로 생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달에서는 중력이 지구의 1/6밖에 되지 않아 지구에서 1미터 뛰는 힘으로 6미터를 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에 나가기 전에 미리 적응훈련을 합니다.

 물속에서 수영하는 듯한 포즈로 우주에서 걷는 법도 배우고, 튜브를 통해 식사하는 방법도 배웁니다.

이런 훈련을 숙달될 때까지 반복해야 우주에 도착해서 탐사도 하고 우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법을 지켜나가는 것도 장차 갈 하늘나라에 적응하기 위해서라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우주비행사들이 불편한 옷을 입고 못난이 걸음을 걷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우주 생활을 연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돌리며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이 모든 것이 장차 갈 영원한 천국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이십사 장로들과 수많은 천사들이 보좌 앞에서 항상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 돌리고 있습니다(계 4장 10~11절, 5장 11~14절).

천국이 그러한 곳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의 법도를 지켜가야 하늘나라에 갔을 때 아무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유월절을 지키고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등등 뭔가 행하라 하시는 성경 말씀에는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돌아가 잘 적응하고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내세웁니다.

‘예배가 토요일이면 어떻고 일요일이면 어때’,

‘유월절을 지키면 어떻고 지키지 않으면 어때’….

우주에 갔는데 ‘투박하고 거치적거리는 우주복 좀 안 입으면 어때’

생각하고 우주복은 벗은 채 지상의 옷을 입고 우주선 밖으로 나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 하셨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계 22장 18~19절, 삼상 15장 22절)

안식일.유월절 하나님의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절대 천국에 돌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에서 하나님의계명 지켜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교회는 왜 토요일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그걸 알기 위해선 당연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살펴 봐야겠죠~~

먼저 매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은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알려주셨습니다
 
이 안식일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계명이기에 하나님께서는 한 주간의 끝날인 제칠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시고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먼저 사람들도 일년 365일을 다 특별한 날로 기념하지 안듯이 그중 아주 특별한 날들만 기억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특별한 날을 우리에게 정해주셨는데요  그날이 바로 일곱째 날 안식일이다.<하나님의교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중에 네번째 계명으로

출20/8  안실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 일곱 요일 중 어떤 날에 해당할까요?

많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이 일요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은 요일상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시간상 겨우 하루 차이지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판가름하고 생명과 사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가 되기 때문입니다(출애굽기 31:13~15). 만약 아무때나 지켜도 된다면 굳이 특별이 십계명으로 주시지도 않고 우리도 특별한날을 아무때나 지켜도 된다면 굳이 날짜를 정하지도 않죠.

안식일이 요일상 ‘토요일’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성경과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먼저 성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
(마가복음 16:9)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버전인 개역한글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이튿날(다음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에서는 “일요일 이른 아침,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뒤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고 후에 도입된 요일제도를 적용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한 것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을 가리켜 일요일이라고 하였으니, 그 전날인 안식일은 당연히 토요일이 되는 것입니다.


달력을 보아도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일순으로 이루어진 달력을 보면 첫째 날은 일요일이며, 일곱째 날은 토요일입니다. <하나님의교회>

국어사전에도 일요일은 ‘칠요일의 첫째 날’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토요일은 ‘일요일로부터 일곱째 날, 주말(週末)’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금성출판사, 국어사전 참고).

영어사전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어사전은 ‘한 주 즉, 7일의 주기는 일요일을 시작으로 하여 토요일에 끝난다(Week: a 7-day cycle beginning on Sunday and ending on Saturday)’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이고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은 토요일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일요일은 일곱째 날이 아니라 ‘한 주의 첫날(sunday: the first day of the week)’, 토요일은 ‘한 주의 일곱째 날(Saturday: the seventh day of the week)’이라고 되어 있습니다(Merriam 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참고).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이라는 것은 일요일을 지키는 가톨릭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책의 일부를 인용한 것입니다.

“’안식일(安息日)’은 쉬는 날이란 뜻인데,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쉬었던 마지막 날, 즉 토요일입니다. 그래서 요즈음도 일력표에 보면 토요일이 주말로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발행한 또 다른 책 ‘억만인의 신앙’에도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쉰다’는 뜻이요, 주일의 일곱째 날 곧 토요일에 해당하는 날이다. ··· 그렇지만 성서에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로 명시되어 있으니 성교회로가 아니라 성서에서부터 직접 종교를 끌어 왔다고 우기는 가톨릭이 아닌 이들도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정말 이치에 맞지 않는다.”

성경의 안식일은 일곱째 날로 요일상 토요일입니다.   <하나님의교회>


시대가 변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예배일은 바뀌지 않습니다.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은 창세 때부터 일곱째 날이었고, 구약시대에도,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2천 년 전에도 일곱째 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일곱째 날 토요일입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그렇다면 오늘날 성경에 없는 일요일예배를 지키는 이들이 많게 되죠그러나 분명 앞서서 살펴 봤듯이 이들이 지키는 일요일은 하나님께서 지키라한 안식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자신들을  '정통교단'이라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지킨 구절을 가리켜 지키지 않은 것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 성경은 저희가 지켜야 할 안식일이 토요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본보여 주시려 지킨 안식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교회>

 


온우주를 창조하신 엘로힘 하나님
                                 (하나님의교회)



만든 이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뉴턴이 우주를 관찰하면서 파악한 태양계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었다.

한 가운데에는 태양을 두고 그 주위에서 각 행성들이 주기에 맞춰 공전과 자전을 하도록 배열했다.

 모형에 연결된 손잡이를 돌리자 각 행성들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조화롭게 움직였다.

 어느 날 뉴턴의 집을 방문한 친구가 태양계 모형을 보고 감탄하여 물었다.

 "대체 누가 이것을 만들었나?
 그 사람은 천재가 틀림 없네."
그러자 뉴턴이 대답했습니다.

"이건 원래부터 저절로 있었던 것이라네."

친구는 황당해하며 다시 물었다.

 "저절로 있었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대체 누가 만들었나?"

 그제서야 뉴턴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질서정연한 우주도 저절로 생겼다고 여기면서 겨우 이 모형 하나가 저절로 만들어졌다는 내 말을 왜 믿지 못하는가.
 사실 이 지구도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라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서 3장 4절

만물을 창조하신 엘로힘 하나님 하나님의교회에 계십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왜  하나님의 법은 행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나요? (하나님의교회)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순자는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행동하는 것만 못하다. 배움은 행함에 이르러서야 멈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무엇이든 듣고 보는 것보다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실제 청각에 의한 기억보다 시각에 의한 기억이 더 우수하고, 하나의 자극보다는 체험을 통해서 입력되는 입체적인 정보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들으면 곧 잊어버리고, 보면 기억하지만, 실천하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직접 실천하고 행한 것들은 단순한 기억을 넘어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가운데 실천하는 신앙이 필요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행함과 실천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교회 )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믿음과 더불어 그에 합당한 행함과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약 2장 14~17절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자기를 구원할 수 없을뿐더러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죽어 있는 믿음의 세계 속에는 어떠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귀로만 듣고 눈으로만 확인한 말씀을 얼마나 이해하고 얼마나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고 말씀을 힘써 상고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천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성경에 수천, 수만의 주옥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한들 우리가 행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그저 지면을 채운 단어의 조합과 나열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았다면 꼭 실천에 옮겨 봅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했을 때 우리가 바라고 원하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하여 확인해보겠습니다

눅 22장 7~15절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무엇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눅 19장 10절).

성경은 영원한 지옥 재앙에 빠지는 것을 멸망이라 하고, 거기서 구제받는 것을 구원이라 합니다.

우리로 세세토록 고난받는 재앙을 면케 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원하고 원하셨던 것이 바로 유월절이었습니다.

눅 22장 19~20절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유월절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계명입니다
(하나님의교회 )

행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받고 행하지 않는 다면 지옥의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꼭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하나님의계명인 유월절 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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